최근 서울과 수도권의 신축 아파트 공급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주택건설 인허가 물량은 2021년을 기점으로 크게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민간 부문은 급격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공급 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 라인’이 ‘더 닷’ 됐네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랜 은둔의 시간을 끝내고 세계 무대에 나서며 출사표와 같이 던졌던 기가 프로젝트 ‘네옴시티’가 용두사미가 될 위기에 처했다. 1조 달러를 쏟아 부어 170㎞에 걸쳐 500m의 초고층 빌딩을 연결하겠다던 네옴시티의 핵심 프로젝트 ‘라인’이 2.4㎞로 축소되었다는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 이후 사우디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더 라인(The line: 선)’이 ‘더 닷(The dot: 점)’이 되었다는 조롱이 섞인 자조가 사우디 내부로부터도 나온다. 애초에 네옴 프로젝트의 실효성과 실행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던 많은 사람은 ‘거봐라, 올 것이 왔다’라는 투로 힐난한다.
일단 사우디 정부는 공식적으론 부인하고 있다. 파이잘 알 이브라힘(Faisal Al Ibrahim) 사우디 경제부 장관은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전속력으로 진행되고 있다”라면서 “사업은 계획된 규모로 계속될 것이며 규모 변경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네옴 프로젝트가 예전처럼 강력한 추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네옴 직원들이 해고되고 있고, 일부 공사업체들이 공사를 중단하고 떠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과연 네옴을 둘러싸고 사우디 내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사우디 정부가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는 추측에 불과할 수밖에 없지만 <더 칼럼니스트> 기고를 통해 처음 네옴 소식을 전했던 필자로서는 나름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사우디의 사정과 심경 변화를 좀 나누고 싶다.
사우디는 홍보마케팅 잘했다?
첫째, 우선 네옴 건설의 목표가 세계의 주목을 끌어 국제사회에서 사우디의 위상을 높이고 여론을 유리하게 끌어와 변두리 국가가 아닌 주축 국가로서 인정받고 싶은 것이었다면, 일단 소정의 목표는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사우디는 이미 2027년 AFC 아시안컵,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 2034년 하계아시안게임, 2034년 FIFA월드컵, 2030년 엑스포 등을 독식하며 국제 사회의 지지를 넘치도록 누리고 있는 중이다. 네옴을 앞세우며 변신해 보겠다는 사우디의 의지에 국제 사회가 일단 화답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사우디 측에서 중요한 것은 더 크게 떠벌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벌려 놓은 것을 하나하나 진중하게 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이미 개최가 확정된 행사를 일정대로 준비에만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강제성이 없는 네옴의 예산을 조정해서라도 국제 행사들에 좀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사우디 국부펀드 현금 바닥
둘째, 그 많던 사우디 국부펀드(PIF)의 현금이 바닥이 났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PIF가 보유한 현금은 2023년 9월 기준으로 약 150억 달러로 집계된다. 약 500억 달러를 보유하던 2022년 상황과 비교하면 70% 급감했다. 특히 PIF가 관련 정보를 공개한 2020년 12월 이후 역대 최저 수준으로도 분석된다. PIF는 7,100억 달러의 자금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다. 빈 살만 왕세자가 사실상 주무르는 것으로 알려진 PIF는 사우디 경제개혁 정책 ‘비전 2030’의 재원으로 쓰인다. ‘비전 2030’은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가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깨고 새로운 판을 깔겠다는 목표에서 시행하는 대형 국책사업 정책이다.
스마트도시 ‘네옴 시티’ 건설, 제2의 국적 항공사 리야드에어 설립, 최근 스포츠 분야의 대규모 투자 등이 대표적 갈래다. 하지만 대형 프로젝트들이 한꺼번에 시행되면서 펀드의 현금이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된다. 네옴을 둘러싸고 축소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라 할 것이다.
상황을 바꾼 우크라이나 전쟁
셋째, 사우디를 둘러싼 국제 환경에 거대한 변화가 생겼다. 최근 사우디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이벤트를 꼽으라면 단연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유가가 급등하며 사우디는 모처럼 호황을 누렸다.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으로 유럽 주요 국가들이 앞다투어 사우디를 방문하며 가스공급을 요청해 왔다. 누군가의 비극이 또 다른 이에게는 희극이 되고마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사우디 측에서는 내심 반갑기 그지없을 것이다. 이후 사우디는 자푸라, 아미랄, 파드힐리 등 이전에 없던 엄청난 규모의 가스 개발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물 들어 온 김에 열심히 노를 젓고 있다. 현대, 삼성, GS 등의 한국 건설사들이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기도 했다.
재생 에너지, 전기차 등 탄소배출 축소가 세계 경제 변화의 가장 큰 화두로 등장하면서 석유경제에 크게 의존하던 사우디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탈석유’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고, 탈석유 시대 대표 프로젝트로 네옴을 띄웠지만 불과 몇 년 만에 국제 사회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생각지 못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며, 탈석유에 가장 앞장섰던 유럽 국가들이 에너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급작스레 가스를 찾아지는 해와 같던 중동국가들의 문을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다.
판데믹으로 인해 풀린 거대한 유동성과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디커플링이 겹치며 전세계가 유래없는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상황도 '탈석유 시대'로의 이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예상보다 전기차 판매도 부진하고, 재생 에너지 보급도 더뎌지면서, 사우디 입장에서도 탈석유로의 전환에 조금 여유가 생긴 셈이다. 사우디 측에서는 당장 큰돈을 벌 수 있는 가스 개발에 최대한 빨리 투자금을 쏟아 부어 한몫을 잡는 것이 이후 탈석유를 위한 재원 마련에도 유리한 상황이다.
미국 투자금이 안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네옴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사우디와 미국 사이의 외교적 갈등이 커지며, 사실상 해외로부터 투자유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우디 정부는 네옴 프로젝트의 막대한 투자금을 혼자 조달할 계획이 결코 아니었다. 최소한의 마중물로 자체 자금을 일부 댄 후에 해외 투자 유치를 통해 자본을 지속으로 확충할 계획이었다. 본질상 부동산개발 사업인 만큼 ‘많은 투자자가 관심을 가질 가겠구나’라고 판단했으리라. 그러나 빈 살만 왕세자를 국제 사회의 왕따로 만들뻔했던 최악의 사건, 워싱턴포스트의 사우디 출신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크지 살해 사건 이후로 수많은 투자자가 사우디를 손절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가 급등하며, 어느 정도 관계가 회복되는 듯이 보이기도 했지만, 바이든 당선 이후 계속되는 갈등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사우디 투자에 뛰어드는 큰 손들이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흐르는 현재 방향
그나마 중국 정부가 미·중 갈등 상황에서 사우디를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사우디에 다양한 투자를 약속했지만 네옴의 성공을 위해선 턱없이 부족한 반쪽짜리일 뿐이다. 결국 부동산 투자의 큰 손인 미국쪽 투자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네옴이 정상궤도로 진입할 날은 멀어만 보인다. 이처럼 사우디가 네옴을 축소할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를 짚어 보았다. 아직은 공식적인 정부의 발표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추측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사우디의 복잡한 속내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많이 보인다.
아직 갈 길이 먼 사우디가 현명한 판단으로 난관들을 헤쳐 나가기를 응원하고, 아울러 한국의 많은 투자자도 올바른 판단으로 위기를 넘어 기회를 포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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