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에 걸친 ‘신(新) 3고(高)’
올해도 한국 경제는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인 신(新) 3고(高)가 계속될 전망이다. 러·우 전쟁의 장기화에 이어 이·팔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세계 경제는 예단할 수 없는 국면으로까지 전이됐다. 금융시장도 종잡을 수 없도록 출렁이고 있다. 지난 4월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에 있는 이란 영사관 공격을 시작으로 동월 13일 이란이 반격하면서 다시 이스라엘이 어떤 재반격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기사가 작성된 동월 17일 이후 그 어떤 상황 전개여도 그 뒤의 이면을 살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국제유가와 다 직결돼 있다. 국제 유가 상승은 바로 물가 상승과 환율 상승, 금리 상승의 전초이다.
경제 지표의 시작은 환율
국내외 경제 환경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게 환율이다. 4월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1,400원에 육박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까지 오른 건 2022년 11월 이후 17개월 만이다. 1,400원대 환율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미국의 고강도 긴축기 등 단 3차례뿐이었다는 점에서 가벼운 사안이 아니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식시장도 충격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각각 2.28%, 2.3% 떨어졌다. 잠시 잠잠한 듯한 국제유가는 언제고 다시 오를 상황이다. 한국은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평균 ±72%라서 중동사태 추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란이 국제원유 주요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라도 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최대 130달러 이상도 치솟을 것이란 전망은 괜한 기우가 아니다.
물가상승의 주됨
고환율과 유가 상승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국내 물가 상승의 원인이기도 하다. 정부는 2024년 경제정책 방향을 수립하면서 원유 전망을 배럴당 81달러(두바이산) 기준으로 삼았는데 한국은행은 지난 2월 경제전망 당시 국제유가를 연간 83달러 기준으로 했다. 4월 중순 기준, 두바이유는 지난 종가 기준 배럴당 90.48달러까지 치솟았다. 정부와 한국은행 기준 수치를 이미 넘어섰다. 지난 4월 12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기준점을 초과한 상태에서 오래 머물러 있다면 물가 전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7월 예정돼 있던 증권사들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기한 없이 밀릴 분위기다. 지금의 ‘3고’ 위기 고통이 예상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점차 진짜 위기가 엄습해 올 것이란 우려도 강하다. 이처럼 지금도 진행형인 중동사태는 지정학적 위기에 취약한 한국 경제 체력을 더 드러내고 있다. 특히 오랜 세월 동안 패권국이었던 미국의 국제 경찰 기능이 약해지면서 중동사태처럼 한국은 지정학적 위험이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한편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은 변할 수 없는 지정학적 취약국’이란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1,400원대 뚫린 환율
4월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94.5원에 마감했다. 2022년 11월 7일(1401.2원) 이후 17개월 만에 가장 높은 금액이다. 당일 1389.9원에 시작된 원·달러 환율이 해당 오전 11시 30분쯤 1,400원을 뚫었다. 장중 고가 기준으로 2022년 11월 7일(1413.5원) 이후 최고치다. 이처럼 급박한 상황에 직면하자 외환 당국은 구두 개입에 나섰다.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 역시도 지난 2022년 9월 15일 이후 처음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금리 인하가 후퇴하는 중에 이스라엘-이란 전쟁 임박 분위기가 더한 지정학적 리스크로 부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고환율 국면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역대급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정부는 약 20조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을 끌어다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화 외평채 발행으로 외평기금 재원을 추가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법 개정이 선결되어야 한다. 현재까지 원화 외평채 발행을 위한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고유가에 고환율까지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3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2024년 3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137.85(2015년=100)였다. 전월 대비 0.4% 올랐다. 수입 물가는 2023년 11월(-4.4%)과 12월(-1.7%) 2개월 연속 하락한 뒤 2024년 들어 4개월째 상승세다. 수입 물가가 오른 건 국제유가 상승 때문인데 실제 두바이유 월평균 가격은 2024년 2월 배럴당 80.88달러에서 동년 3월 84.18달러로 뛰었다. 수입 물가 상승은 보통 1~3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주는데 이 정도 상황이라면 물가 불확실성은 더 증가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4월부터 수입 물가 상승은 더 가파르게 오를 전망이다. 국제유가 상승세는 당분간은 지속될 걸로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환율까지 덮친 상황이다. 공공요금 상승도 유가 상승과 연결돼 있다.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기 구매가인 계통한계가격(SMP)이 유가 상승과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재무 상황과 국제연료 가격 등을 고려해 추가 인상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에너지 업계도 비상
전기나 난방 등의 대부분 원료를 수입하는 에너지 업계도 원가 상승에 따른 압박이 크다. 한국전력과 가스공사 등 에너지 관련 공기업은 2023년 1,243원으로 평균 원·달러 환율을 설정하고, 5년 단위별 중장기 재무계획을 짜놨다. 특히 LNG(액화천연가스)와 유연탄 등 전기생산의 주요 연료는 대부분 수입하고 있기에 환율 상승은 한전의 생산 원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한편 소비자가 내는 전기요금은 2023년 5월 이후 1년 가까이 동결 중인데 제22대 총선이 끝난 현시점, 한전의 고민이 깊어진 상황이다. 원가 상승의 압력이 계속 커진 상황에서 지금처럼 동결은 어렵지 않겠냐는 게 많은 에너지 전문가의 관측이다. 전기를 사 오는 기준이 되는 SMP(계통한계가격) 역시 LNG와 LPG(액화석유가스) 등도 발전원료 가격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 악화로 이어짐은 예정된 수순이다.
가스공사의 경우는 장기계약을 통해 가스를 도입하기 때문에, 환율 상승이 당장 제한적인 영향일 수 있지만 장기간 고환율이 지속이 되면 재계약 시기인 원료도입가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수출에 있어선 영향이 적을 것이란 분석이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 품목이 대부분 고부가가치 품목 중심이다 보니 단기적인 환율 변동이 제품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산업부 관계자는 “고환율이 지속되면 수출 부문에서도 타격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고환율
달러의 위기론은 매년 나오는 이슈이다. 하지만 기축통화로서 달러는 지금처럼 국제 정세의 불안 속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다시 세계 자본 시장은 달러로 몰리고 있다. 이는 달러를 대신하겠다고 하는 신흥국 통화 가치의 하락과도 상통되는 부분이다. 지난 4월 16일 CNBC에 따르면 이날 오후 기준(한국시간)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신흥국 통화지수는 전일 대비 0.27% 하락한 1708.92였다. 이는 2023년 12월 13일(1707.77) 이후 최저로까지 낮아졌다. 일본도 약세다. 엔·달러 환율은 동일 기준, 1990년 6월 이후 처음으로 154엔을 넘어섰다. 인도네시아 역시 ‘달러 대비 루피아 환율’은 2020년 4월 이후 처음으로 1만6,000루피를 넘어서면서도 통화 약세를 나타냈다. 각국 금융당국은 시장 개입을 내비치면서 자국 통화 방어 의지를 표명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화폐 가치가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바로 자국의 비인도 선물과 현물 시장에 개입했다. 일본 당국도 외환시장의 투기적 움직임을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대응하겠다고 천명했다.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는 다시 달러 강세의 회복 속에서 추가 하락이 예상된다. ‘미툴 코테차 칼리온’ 신흥국 거시 전략 책임자는 “아시아 통화 대부분은 달러 강세에 굴복하게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