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저출산 정책 먹혀드는 일본

  • 양소희 기자

  • 디자인

    김은비 디자이너

일본 젊은이들, 대학 학비 무료에 ‘환호’
다양해진 입시 진로에 사교육비 부담 없어
“학비만 해결해준다면” 대학 진학에 적극
버블 터진 후 집값 안정, 초저금리도 한 몫



“애는 알아서 큰다” 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한국에서 적어도 ‘남들 하는 만큼’은 해주며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은 경쟁 심리와 공존하며 출산율 저하를 초래했다. 출산의 ‘기회비용’이 제대로 보상되지 않는다는 지적 역시 출산 가능 연령대에 있는 남녀를 망설이게 만든다. 1명대에서 횡보하던 합계 출산율이 지난해 0.778명(2022년 기준)으로 역대 최저를 갈아치웠고, 서울은 0.59명으로 그중에서도 가장 낮다. 반면 SNS 발달로 ‘남들 하는 만큼’의 기준은 치솟았고 경쟁 피로감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교육비와 집값 부담은 단골 요인으로 언급된다.

옆 나라 일본 역시 지난 20년간 저출산으로 앓고 있지만 합계 출산율은 1.3명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1.8배 이상이며, 결혼 평균 나이도 한국이 2023년 기준 남자 33.72세, 여자가 31.36세인 것에 비해 일본 후생성 기준 남자 31.1세, 여자 29.4세로 젊다. 출산이 가능한 일본 세대에게 ‘교육비와 집값 부담’은 없는 것일까? 현지인들을 인터뷰하며 일본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어 봤다.



역시 교육비, 주요 요인에선 엇갈려
양국의 출산 가능 연령대 남녀들에게 물어보면 공통으로 ‘교육비 부담감’이 출산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인 것으로 확인된다. 다만 한국은 사교육비였던 것과 달리, 일본 젊은이들은 대학 등록금이 가장 큰 부담 요인이란 입장이다. 도쿄대를 졸업하고 개발자로 근무 중인 한 일본인 A씨는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조부모의 재력 지원이 없으면 갈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싸다”라며 “국립대는 전 학부 일괄 1년 학비가 60만엔(약 550만 원) 정도지만 사립대는 그 2배가 훌쩍 넘는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의 연고대처럼 ‘소케이’ 라인으로 불리는 게이오대학은 연간 학비가 최소 130만 엔(약 1,180만 원)에서 학부에 따라 최대 300만 엔(약 2,722만 원)에 이른다. 와세다대 역시 130만 엔부터 시작한다.

한국 ‘중경외시’ 라인으로 여겨지는 아오야마 대학을 '일관제'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졸업한 B씨 역시 “학비로만 1년에 130만 엔이 훌쩍 넘어갔다”라며 “나는 통학을 하긴 했지만 기숙사 비용도 굉장히 비쌌다”라고 전했다. 이들은 한국의 4년제 대학 등록금 평균이 676만 원(약 74만 엔)이라는 점을 듣자 “국립대학 수준”이라며 놀랐다.

일본 정부 역시 이 같은 여론을 의식했는지 지난 7일 3명 이상 출산하는 다자녀 세대에 대해 사립과 공립을 불문하고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다자녀 세대의 4년제 대학, 전문대, 고등 전문학교 수업료가 전액 면제 정책이 확정됐다는 소식은 현지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기존 일본 정부는 연간 수입 380만 엔(약 3,400만 원) 이하 가구에 대해서만 대학 수업료를 면제해왔지만 2024년에는 600만 엔(약 5,448만 원)으로 상한선이 상향 조정되고, 2025년부터는 완전 무차별적 무상 복지로 전환된다.

이 정책에 대해 일본인들은 긍정적인 반응이다. A씨와 B씨는 “어차피 1~2명은 낳을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확정된 정책만 놓고 보면 3명까지도 고려할 거 같다”라고 말했다. 이밖에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의 일본 여론을 살펴봐도 ‘아이 셋을 낳는다고 가정했을 때 적어도 교육비로 골머리 썩힐 일은 없겠다’, ‘사립대학이 포함된 것이 크다’라는 호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일본의 구(舊)제국대학을 포함한 국립대의 경우 숫자가 한정돼 있기에 사립대학까지 실질적으로 포함되는지 여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사교육 부담과 관련해서는, 일본 젊은이는 “부활동(동아리 활동) 등으로 고등학생의 경우라도 주 2회 넘게 학원에 가는 경우가 많지 않아 월평균 소모 금액이 3만 엔(약 27만 원)에서 비싸도 5만 엔(45만 원)을 넘기는 경우가 많지 않아 사실 출산을 망설일 정도의 이유까지는 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대학을 가는 방법 중, 하나인 ‘부’ 활동도 거의 모든 학교가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와세다대 등 대부분의 상위 대학들도 해당 전형을 가졌는데 이 중 여러 대학이 입학 시, 부 활동과 직결되는 전공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일본 사이타마현에 거주 중인 C씨는 “부 활동으로 대학을 입학했고, 최근에는 취업까지 했다”라며 “이런 전형이 꽤 열려 있기에 ‘입시가 아니면 안 된다’라는 부담감은 덜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해왔던 동아리 활동은 농구부였지만 대학은 경영학과로 입학했으며 입사는 IT 기업을 택했다. 그는 “대학과 취업 면접에서 오랫동안 하나의 활동을 지속으로 해온 점과 그 과정에서 배운 정신과 리더쉽, 협업 능력 등 질문이 주를 이뤘다”라며 “입시나 사교육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日 “도쿄 근교에 충분히 집 살 수 있어”
한국에서는 교육비와 함께 집값이 출산 부담 요인으로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여러 일본인에게 저출산 요인을 물어봤을 때 집값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최근 아이가 태어난 31살의 직장인 D씨와 34살 E씨는 각각 치바현과 가나가와현에 집을 장만했다. 이곳은 모두 도쿄 도심 지역인 신주쿠까지 소요 거리가 지하철로 30분~1시간 정도로 멀지 않고 인프라도 잘 마련돼 있어 신혼부부들이 많이 산다.

D씨는 대출 없이 1500만 엔(약 1억 3,612만 원)에 방이 4개짜리 주택을 매입했고, E씨는 4,000만 엔(약 3억 6,300만 원)의 맨션을 대출받아 샀다. E씨는 “23살에 대학 졸업한 후부터 줄곧 일해서 모은 자금의 상당 부분과 대출금으로 집을 구매했다”라며 “금리가 워낙 낮아서 지금 이자로 나가는 돈은 도쿄에 혼자 살던 시절 야칭(월세)보다 적다”라고 전했다.

D씨와 E씨 모두 “회사 앞에서 살던 때보다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긴 했지만 무리가 될 정도는 아니다. 대부분이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도쿄 근교로 빠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중 E씨는 “결혼 전 여자친구와 신주쿠, 아사쿠사 근처에서 2년 정도 동거했다”라며 “도쿄 한가운데였는데 당시 1년간은 야칭이 15만 엔(약 136만 원), 나머지 1년은 야칭이 24만 엔(약 217만 원)인 곳에서 살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이 전세가 없는 점을 언급하며 “관리비까지 합하면 한 달에 나가는 돈이 상당했는데, 도쿄 근교는 집값 매매가가 2,000만 엔대에서 6,000만 엔대를 넘기지 않아 내가 열심히만 일하면 살 수 있는 정도였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살기 좋은 도시 예, 요코하마
실제로 가나가와현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는 요코하마의 집값은 신혼부부용이 4,000만 엔 정도다. 도쿄의 절반 혹은 그 이하로 알려져 있으며 식비와 교통비도 전반적으로 도쿄보다 저렴하다. 거리상 등 여러모로 한국의 일산이나 분당과 비교되는 점을 감안해 보면 차이가 큰 편이다.

D씨는 “아이를 낳았는데 집이 없으면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것 같다”라며 “물론 일본도 도쿄 한가운데는 1억 엔(약 9억 1,000만 원)에서 2억 엔대 집들이 있긴 하지만 그 이외 지역들은 대부분 싸기 때문에 ‘집이 없어서 아이를 못 낳는다는 말은 없다”라고 밝혔다. E씨 역시 “지방 대도시로 가도 집값은 더 싸지고, 도심이 아니어도 오히려 아이를 키우기엔 더 좋다고 여겨지는 지역들이 꽤 있다”라며 “출산을 고민할 때 집값은 특별히 고려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들도 기회만 된다면 도쿄에 집을 사고 싶다는 마음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버블경제 이후 내려간 부동산이 오른다 해도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는 오르지 않을 것이다. 지진 때문에 건축물은 감가상각 특성이 강하다는 생각은 꼭 도쿄를 고집하지 않게 만들었다. 도쿄 근교, 지방 등에 특성에 따른 균형이나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는 점도 여기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버블이 터진 후 30년 지난 시점,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에 맞게 적응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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